목적지 없이
이백체육공원 앞길 따라 주천을 향해 드라이브
갑자기 눈에 들어온 아주 작은 표지판
[ 초촌리고분군 ]
"가볼까?"
"그래~"
하며 작은 다리를 따라 우회전 해 진입하였으나
왠일.. 황당.. 당황
더이상의 이정표가 없다
이 당혹스러움이란..
일단 길을 따라 직진직진
시골길을 따라 구불구불 지나다
눈에 들어오는 기와가 올려진 빨간 옛 건축물..
딱 사당 모습인데 모징?
치솟는 호기심에 우다다다~
대문이 닫힌 채 "의충사" 현판이 걸려있다
조선 선조 당시 의병장이었던 조경남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당이란다
의병장 조경남
사실 처음 들어본다
이 고장에 이런 인물이 있었다니
집에 돌아와 [ 조경남 ]을 검색해보았으나
백과사전 딱 하나의 기록만 검색된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1554
선조3년 1570년 전북 남원 출생
인조19년 1641년 사망하였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의병활동을 하였다고
괄목할만한 것은
그가 두 번의 전란을 겪으며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난중잡록]이
[ 선조수정실록 ]을 편찬하는데
사료로 참고되었을 만큼
공신력이 있었다는 것!
### 말하자면 내가 쓴 이런 끄적임들이
국가 기록물 편찬에 인용된다는 거잖아
정말이지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난중잡록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이 문서는 조선 선조 때 의병장 조경남이 1582년부터 1638년까지, 57년간 국내 중요사실을 일기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1597)에 대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보다 폭넓게 다루고 있으며, 이괄의 난, 정묘/병자호란 등 중요 사건과 풍속, 민간 생활등을 상세하게 적어 놓아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된다. 여뎗 권에 달하는 많은 분량의 문서로 문체 또한 수려하고 간결하다. 조정에서 선조수정실록을 엮을 때, 이 난중잡록을 빌려다가 베끼어 그 사본을 규장각에 보관하였고, 원본은 조경남의 후손이 오늘날까지 보존하고 있다
사당 옆으로 헌성비 등 기념비가
쭉 늘어서 있고 그 맞은편에
"강당_의충사수호관리위원회"
"난중잡록보호각 / 조경남선생유품"이라 적힌
작은 기와집 두 채가 있다
그리고 사당 뒷편에는
의병장의 묘로 올라갈 수 있는
작은 골목과 돌계단이 이어진다
묘까지 오르니
의충사의 뒷모습과 이백의 들녁이 쫘악~
아.. 시원하다
뜻밖의 역사공부를 마치고
초촌리고분군에 미련을 못버리고 찾아보려 했으나
막다른 길 앞에 OTL
포기!! ㅠㅠ
고분군은 모르겠고
이곳저곳 묘는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