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美

공지 사항

'의종'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7/04/21 장선왕후(莊宣王后)
  2. 2007/04/21 장경왕후(莊敬王后)
  3. 2007/04/21 공예태후(恭睿太后)
  4. 2007/04/20 고려 제 20대왕 신종
  5. 2007/04/20 고려 제 19대왕 명종
한국역사/고려 2007/04/21 16:54 by 美
장선왕후(莊宣王后)
간략정보
시대 고려
생몰년 미상
활동분야 왕비
장선왕후(莊宣王后)에 대하여
장선왕후(莊宣王后)
생몰년 미상. 고려 의종의 제2비. 성은 최씨이며,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단(端)의 딸이다.
1148년(의종 2) 8월에 비가 되었으나 소생은 없다.
참고문헌
高麗史. 〈鄭容淑〉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한국역사/고려 2007/04/21 16:52 by 美
장경왕후(莊敬王后)1
간략정보
시대 고려
생몰년 미상
시호 장경(莊敬)
활동분야 왕비
장경왕후(莊敬王后)1에 대하여
장경왕후(莊敬王后)1
생몰년 미상. 고려 제18대왕 의종의 제1비. 성은 김씨(金氏). 종실 강릉공 온(江陵公溫)의 딸이다. 누구의 성을 따라 김씨라 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강릉공은 고려 제11대왕 문종의 손자이며, 제15대왕 숙종과는 이모형제(異母兄弟)인 조선공 도(朝鮮公燾)의 아들이다. 의종은 숙종의 증손이기 때문에 장경왕후와의 관계는 재종숙질관계이다.
고려왕실에서 남매간 혼인사례도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경우는 근친흔적 성격이 어느 정도 지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강릉공의 세 자매는 모두 인종의 세 왕자들과 혼인하여, 한명은 의종비가 되고 한명은 명종비가 되었으며, 나머지 한명은 신종비가 되었다.
또, 아들인 공화후 영(恭化侯瑛)은 인종의 딸인 승경궁주(承慶宮主)와 혼인하였다. 왕실의 왕자 및 공주와 사중(四重)의 중복혼인을 하였던 점으로 보아 왕실내에서도 상당히 유력한 위치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의종이 태자로 있을 때 맞아들여 배필로 삼았고, 즉위 후에 흥덕궁주(興德宮主)로 봉하였다. 효령태자(孝靈太子)와 경덕(敬德)·안정(安貞)·화순(和順)의 세 공주를 낳았다. 효령태자는 1153년(의종 7)에 왕태자로 책봉되었으나, 1170년 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일어난 뒤 진도현에 유배되었다. 시호는 장경(莊敬)이다.
1253년(고종 40)에 혜자(惠資)의 시호를 더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公主의 婚姻關係를 통해본 高麗王室婚의 一斷面(鄭容淑, 歷史學과 考古學, 1985). 〈鄭容淑〉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한국역사/고려 2007/04/21 16:49 by 美
공예태후(恭睿太后)
간략정보
시대 고려
생몰년 1109-1183(예종4-명종13)
시호 공예(恭睿)
활동분야
공예태후(恭睿太后)에 대하여
공예태후(恭睿太后)
1109(예종 4)∼1183(명종 13). 고려 인종의 비. 성은 임씨(任氏). 중서령 원후(元厚)의 딸이며, 문하시중 이위(李瑋)의 외손녀이다.
이위는 외손녀 공예태후가 출생하던 날 황색의 기가 중문에 세워져 기 끝이 선경전(宣慶殿)의 치미(鴟尾:궁정·성루 등의 대들보 위에 장식한 기와)에 얽혀 나부끼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15세에 평장사(平章事) 김인규(金仁揆)의 아들 지효(之孝)에게 시집가던 날 갑자기 지효가 병이 나서 죽었으므로 파혼하고 집으로 되돌아왔는데, 이때 점술가가 병을 점치고는 국모가 될 것이라 하였다고 한다.
인종도 이상한 꿈을 꾸고 1126년(인종 4) 이자겸(李資謙)의 두 딸을 쫓아버리고 임씨를 맞아 연덕궁주(延德宮主)로 삼았다. 이자겸의 두 딸이 쫓겨난 것은 인종을 해치려는 이자겸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데 이유가 있었다.
1129년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태후가 낳은 의종이 즉위하자 왕태후로 높이고 전(殿)을 후덕(厚德)이라 하였다. 태후는 의종·대령후 경(大寧侯暻)·명종·충희(冲曦)·신종의 다섯형제와 승경(承慶)·덕녕(德寧)·창락(昌樂)·영화(永和)의 네 공주를 낳았다.
1183년 죽은 뒤 순릉(純陵)에 장사지냈다. 시호는 공예(恭睿)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秦星圭〉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한국역사/고려 2007/04/20 18:28 by 美

신종(神宗)



1144(인종 22)∼1204(신종 7)

고려의 제20대왕

재위 1197∼1204

본관은 개성

 

이름은 탁(晫), 초명은 민(旼), 자는 지화(至華). 의종의 다섯째 아들이며 명종의 동모제이고, 비(妃)는 강릉공(江陵公) 김온(金溫)의 딸인 선정태후(宣靖太后)이다.

 

평량공(平凉公)에 봉해진 뒤 최충헌(崔忠獻)형제가 명종을 폐하고 왕으로 추대하여 대관전(大觀殿)에서 즉위하였다.

 

1198년(신종 1) 산천비보도감(山川裨補都監)을 두었고, 관서(關西)민가의 안대(방앗간을 차림.)를 금하였다. 그해 사노(私奴) 만적(萬積)의 난이 일어난 것을 비롯하여 이듬해에는 명주(溟州:지금의 江陵)·동경(東京:지금의 慶州), 뒤이어 진주(晉州)·전주·합주(陜州:지금의 陜川) 등지에서 민란이 계속 일어났다.

 

1199년에 최충헌이 문무관의 전주(銓注:人事行政)를 도맡아 행하였는데, 이로부터 모든 실권은 최충헌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해 수양장도감(輸養帳都監)과 오가도감(五家都監)을 두었다.

 

1202년에 탐라(耽羅:지금의 濟州道)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소부소감(少府少監) 장윤문(張允文)과 중랑장(中郎將) 이당적(李唐積)을 안무사(安撫使)로 보내어 평정하였다.

 

1204년 등창이 심하여 태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시호는 정효(靖孝)이며, 능은 양릉(陽陵)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한국역사/고려 2007/04/20 18:27 by 美

명종(明宗)



1131(인종 9)∼1202(신종 5)

고려의 제19대왕

재위 1170∼1197

본관은 개성(開城)

 

 

이름은 호(晧). 초명은 흔(昕), 자는 지단(之旦). 인종의 셋째아들이며 의종의 친동생이다. 비(妃)는 강릉공(江陵公) 김온(金溫)의 딸인 의정왕후(義靜王后)로 강종이 즉위하여 광정태후(光靖太后)라 하였다.

 

 

1148년(의종 2)에 익양후(翼陽侯)가 되었다가 1170년에 정중부(鄭仲夫) 등이 반란을 일으키고 추대하여 대관전(大觀殿)에서 즉위하였다.

 

 

즉위하고 나서 곧 수문전(修文殿)에 나아가 정중부를 참지정사(參知政事), 이고(李高)를 대장군·위위경(衛尉卿), 이의방(李義方)을 대장군·전중감(殿中監)에 임명하는 등 자격과 서열을 무시하고, 또 문관직과 무관직에 관계없이 정중부 일파가 바라는 대로 관직을 임명하였다. 이리하여 왕은 허수아비가 되고 실권은 무신에게 돌아갔다.

 

 

1171년(명종 1)에 이고가 반란을 도모하므로 그와 그 일당을 주살하였다. 그해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와 경상·진합주도(慶尙晉陜州道)를 각각 2도로 구분하였으며, 왕의 생일을 건흥절(乾興節)로 정하였다.

 

 

1173년에 원자(元子) 도(璹:후에 康宗)를 세워 태자를 삼고 56현에 각각 감무(監務)를 두었다. 그해 동북면 병마사(東北面兵馬使) 김보당(金甫當)이 정중부와 이의방의 타도와 전왕인 의종의 복위를 위하여 동계(東界)에서 군사를 일으켰으나, 정중부와 이의방 등에 의하여 평정되고 의종은 경주에서 이의민(李義旼)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 그해 3경(京)·4대도호부(大都護府)·8목(牧)으로부터 군(郡)·현(縣)·역(驛)·관(館)에 이르기까지 무인의 등용을 허락했으며, 이때부터 지방관까지도 무신이 장악하게 되었다.

 

 

1174년에 지리도참설(地理圖讖說)에 의하여 좌소 백악산(左蘇白岳山)과 우소 백마산(右蘇白馬山)·북소 기달산(北蘇箕達山)에 연기궁궐(延基宮闕)을 두기로 하고 그 조성관(造成官)을 두었다.

 

 

그해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趙位寵)이 정중부와 이의방의 타도를 위하여 서경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윤인첨(尹麟瞻)을 원수(元帥), 기탁성(奇卓誠)을 부원수로 삼아 서경을 치게 하여 2년 만에 평정하였다. 1175년에 영양 등 10현에 감무를 두었으며, 1178년에 찰방사(察訪使)를 각 도에 파견하여 백성들의 고통과 지방관들의 근태를 살피게 하였다. 또한, 연등회를 1월 15일에 행하던 것을 옛 제도에 의하여 2월 15일로 환원하였다.

 

 

1182년에 패역(悖逆)이 심한 것으로 판단되는 관성현(管城縣:星州)과 부성현(富城縣:瑞山)을 폐지하였다.

 

 

1186년에 장군 차약송(車若松) 등 무관 43인을 내시원(內侍院)과 다방(茶房)에 겸속시켰는데, 무신의 겸속은 이것으로부터 비롯되었으나 이것으로 무신은 왕의 근시직(近侍職)까지도 차지하게 되었다. 그해 경상주도와 진합주도를 합쳐 경상주도로 삼았다.

 

 

1188년에 양계 병마사와 오도안찰사로 하여금 지방을 순찰하여 지방관들의 청렴과 탐학, 근면과 태만을 살피게 하였다. 1190년에 수태사(守太師)이하 백관 의종(儀從)의 구사(丘史)의 원수(員數)를 정하였다.

 

 

1192년에 공사의 연회에 유밀과(油蜜果)의 사용을 금하였는데 그것은 유밀이 귀해졌기 때문이었다. 1195년에 오래 묵은 빚인 숙채(宿債)를 면하게 하여 빚에 시달리는 민생의 괴로움을 덜어주려 하였고, 상주에 공검대제(恭儉大堤)를 축조하여 권농에 힘쓰기도 하였다.

 

 

1196년에 최충헌(崔忠獻)이 이의민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한 뒤 정치의 쇄신과 중흥을 목표로 하는 내용의 봉사십조(封事十條)를 올리므로 이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1197년에 최충헌 형제에게 폐위를 당하고 아우인 평량공(平凉公) 민(旼)이 대신 왕위에 올랐다. 시호는 광효(光孝)이며, 능은 지릉(知陵)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1 2 
BLOG main image
It's美

by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616)
Sinology (18)
창조과학 (15)
맛 만들기 (45)
홍콩스토리 (44)
others (29)
한국역사 (410)
It's美 (18)
땅밟기 (6)
한마디 (7)
SEANOL (23)

달력

«   2008/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tatistics Graph
tistory!get rss Tistory Tistory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