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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08 조선 제 24대왕 헌종
  2. 2008/05/08 조선 제 23대왕 순조
한국역사/조선 2008/05/08 15:48 by 美
헌종(憲宗)


1827(순조 27)∼1849(헌종 15).
조선 제24대 왕.
재위 1834∼1849.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환(奐).
자는 문응(文應),
호는 원헌(元軒).


1827년 7월 18일 창경궁 경춘전(景春殿)에서 태어났다.
순조의 손자로, 익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딸 신정왕후(神貞王后)이다.

1830년(순조 30) 왕세손(王世孫)에 책봉되고, 1834년 순조가 죽자 이해 8세의 어린 나이로 경희궁 숭정문(崇政門)에서 즉위하니,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순조妃)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1837년(헌종 3) 3월 영흥부원군(永興府院君) 김조근(金祖根)의 딸을 왕비(孝顯王后)로 맞았으나 1843년에 죽자 이듬해 10월 익풍부원군(益과府院君) 홍재룡(洪在龍)의 딸을 계비(明憲王后)로 맞았다. 새로 등장한 외척 풍양조씨 일문의 세력이 우세해지면서, 순조 때부터 정권을 전횡해 온 안동김씨를 물리치고 한동안 세도를 잡았으나, 자체 내의 알력과 1846년 조만영의 죽음을 계기로 정권은 다시 안동김씨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대왕대비의 철렴(撤簾)으로 1841년 비로소 친정(親政)의 길이 열렸으나 세도정치의 여파인 과거제도 및 국가재정의 기본이 되는 삼정(三政)의 문란 등으로 국정이 혼란해졌으며, 재위 15년 중 9년에 걸쳐 수재(水災)가 발생하여 민생고가 가시지 않았다.

또한, 1836년에는 남응중(南膺中), 1844년에는 이원덕(李遠德)·민진용(閔晉鏞) 등의 모반사건이 일어나고, 1848년부터는 많은 이양선(異樣船)의 출몰과 그 행패로 인하여 민심이 소연하였다.

순조 때의 천주교 탄압정책을 이어받아서 1839년에 주교 앵베르(Imbert, L. J. M.), 신부 모방(Maubant, P. P.)과 샤스탕(Chastan, J. H.)을 비롯하여 많은 신자를 학살하였으며(기해박해), 이어 천주교인을 적발하기 위하여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실시하고, 1846년 최초의 한국인 신부 김대건(金大建)을 처형하였다.

재위기간에 《열성지장 列聖誌狀》·《동국사략》·《문원보불 文苑黼黻》·《동국문헌비고 東國文獻備考》·《삼조보감 三朝寶鑑》 등을 찬수하게 하고, 각도에 제언(堤堰)을 수축하게 하는 등의 치적을 쌓았다.

글씨를 잘 썼다. 1849년 창덕궁 중희당(重熙堂)에서 23세로 후사 없이 죽었다. 수용(睟容) 1본이 선원전(璿源殿)에 봉안되었으며, 능은 경기도 양주 건원릉(健元陵)서쪽 경릉(景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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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조선 2008/05/08 15:45 by 美

순조(純祖)


1790(정조 14)∼1834(순조 34).
조선 제23대왕.
재위 1800∼1834.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공(玜).
자는 공보(公寶),
호는 순재(純齋).

1790년 6월 18일 창경궁 집복헌(昌慶宮集福軒)에서 정조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박준원(朴準源)의 딸 수빈(綏嬪)이다. 1800년(정조 24) 정월 왕세자에 책봉되고, 이해 6월 정조가 승하하자, 7월에 11세의 어린 나이로 창덕궁 인정문(仁政門)에서 즉위하니, 대왕대비 정순왕후(貞純王后:英祖繼妃 慶州金氏)가 수렴청정하게 되었다. 1802년(순조 2) 10월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의 딸을 왕비(王妃:純元王后)로 맞았다.

1801년 대왕대비는 궁방(宮房)과 관아(官衙)에 예속되어 있던 공노비(公奴婢)를 혁파하고 서얼유통(庶孼流通)을 시행하는 한편, 정조 때부터 집권해오던 시파(時派)에게 보복하기 위해서 사교금압(邪敎禁壓)이라는 명분으로 200여명의 천주교신자들을 학살할 때 시파를 모두 숙청하였다(辛酉迫害). 한편, 왕의 친정 뒤에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은 계속되어 1815년에는 경상·충청·강원도의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 죽이고(乙亥迫害), 1827년에도 충청·전라도의 교인들을 검거해 혹독한 탄압을 가하였다.

1804년 12월 대왕대비가 물러남으로써 친정을 시작하였으나, 정조의 유탁(遺託)을 받고 정치에 관여하게 된 국구(國舅)김조순 일문에 의한 안동김씨(安東金氏)의 세도정권이 확립되어, 김이익(金履翼)·김이도(金履度)·김달순(金達淳)·김희순(金羲淳)·김명순(金明淳) 등이 조정의 요직을 모두 차지하여 전횡(專橫)과 뇌물을 받는 행위를 일삼으니, 인사제도의 기본인 과거제도가 문란해지는 등 정치기강이 무너져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각종 비기(秘記)와 참설(讖說)이 유행하는 등 사회혼란이 일어났다. 이를 틈타서 1811년 평안도 용강(龍岡)사람인 홍경래(洪景來)와 그 무리가 반란을 일으켜 평안도일대를 점령한 뒤 관군과 대결하였으나, 이듬해 4월 정주성(定州城)이 함락됨으로써 난은 평정되었다. 그러나 이해에 한성에 도적과 거지떼가 들끓었고, 1813년 제주도의 토호 양제해(梁濟海)와 1815년 용인의 이응길(李應吉)이 민란을 일으켰다.

1817년에는 유칠재(柳七在)·홍찬모(洪燦謨) 등의 흉서사건(凶書事件), 1819년에는 액예(掖隷)와 원예(院隷)의 작당 모반운동(謀叛運動), 1826년에는 청주에서 괘서사건(掛書事件)이 일어났으며, 1821년에는 서부지방에 전염병이 크게 번져 10만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재위 34년 중 19년에 걸쳐 수재(水災)가 일어나는 등 크고 작은 천재지변이 잇달아 발생하였다.

한편 왕은 《양현전심록 兩賢傳心錄》·《사부수권 四部手圈》·《대학유의 大學類義》·《정조어정홍재전서 正祖御定弘齋全書》·《서운관지 書雲觀志》·《동문휘고 同文彙考》 등을 간행하게 하고, 일본에 통신사를 보내는 등의 치적이 있었다. 또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아서 풍양조씨(豊壤趙氏)일문을 중용하고, 1827년 세자(世子:翼宗)에게 대리청정(代理聽政)하게 함으로써 안동김씨의 세도를 견제하고자 하였으나, 1830년 세자가 일찍 죽음으로써 실패하였다. 1834년(순조 34) 11월 45세로 죽으니 수용(睟容)4본이 있어 경모궁망묘루(景慕宮望廟樓)·경우궁성일헌(景祐宮誠一軒)·선원전(璿源殿)·영희전(永禧殿)에 각각 봉안하였으며, 경기도 광주에 장사지내고 인릉(仁陵)이라 이름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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