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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태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04/20 고려 제 16대왕 예종
  2. 2007/04/20 고려 제 15대왕 숙종
한국역사/고려 2007/04/20 18:21 by 美

예종(睿宗)



1079(문종 33)∼1122(예종17)

고려 제16대왕

재위 1105∼1122

본관은 개성

 

 

이름은 우. 자는 세민(世民). 개성왕씨(開城王氏). 숙종의 장자로서 어머니는 명의태후 유씨(明懿太后柳氏)이다.

 

 

일찍부터 뜻이 깊고 침착하여 도량이 넓었으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부왕인 숙종의 여진정벌에 대한 서소(誓疏:맹세하는 축원문)를 간직하고 즉위한 뒤 군법을 정비하고 신기군을 사열하는 등 여진정벌에 힘써 1107년(예종 2)에 윤관(尹瓘·오연총(吳延寵) 등으로 하여금 여진을 쳐서 대파하고 이듬해에는 함흥평야 일대에 9성(城)을 설치하게 하였다.

 

 

그러나 계속적인 여진족의 침입, 9성방비의 어려움, 또 윤관의 공을 시기하는 자들의 책동으로 1년 만에 9성을 철폐하고 여진에게 돌려주었다.

 

 

1109년 국학(國學)에 학과별 전문강좌인 칠재(七齋)를 설치하여 관학(官學)의 진흥을 꾀하였다.

 

 

1112년 혜민국(惠民局)을 설치하여 빈민들의 시약을 담당하게 하였고, 이듬해에는 예의상정소(禮儀詳定所)를 설치하였다.

 

 

1115년 완안부(完顔部)의 추장 아구타(阿骨打)가 여진족을 통일하여 황제라 일컫고 나라 이름을 금(金)이라 칭하자, 요(遼)나라에서 금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고려에 원병을 청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1116년 청연각과 보문각(寶文閣)을 짓고 학사(學士)를 두어 경적(經籍)을 토론하게 함으로써 유학을 크게 일으켰으며, 송나라에서 대성악(大晟樂)을 들여왔는데, 이것이 아악(雅樂)이라는 궁중음악이다.

 

 

1117년 금나라에서 “형인 대여진금국황제(大女眞金國皇帝)가 아우인 고려 국왕에게 글을 보낸다.”는 글로써 화친하기를 청하였으나, 조정의 반대로 회답하지 않았다.

 

 

1119년 양현고(養賢庫)라는 장학재단을 국학에 설립하였다. 이때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학사(學舍)를 널리 설치하고, 국학 칠재의 정원을 유학 60인과 무학 17인으로 하며, 명유를 뽑아 학관(學官)으로 삼아 가르치게 하니 문풍이 크게 진작되었다.

 

 

1120년 팔관회를 열고 태조의 공신인 신숭겸(申崇謙)·김락(金樂)을 추도하여 도이장가를 지었다.

 

 

1122년 4월에 죽자, 태자 해(楷:仁宗)가 즉위하였다. 능은 개성에 있는 유릉(裕陵)이며,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東史綱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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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고려 2007/04/20 18:19 by 美

숙종(肅宗)



1054(문종 8)∼1105(숙종 10)

고려 제15대왕

재위 1095∼1105

본관은 개성(開城)

 

 

초명은 희(熙), 이름은 옹, 자는 천상(天常). 문종의 3남이며 선종의 동모제(同母弟)이다. 비는 유홍(柳洪)의 딸 명의태후(明懿太后)이다.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과단성이 있고, 오경(五經)·제자서(諸子書)·사서(史書) 등에 해박하였다. 문종의 큰 기대를 받아 “뒷날에 왕실을 부흥시킬 자는 너다.”라고 하여 문종 때 계림공에 봉하여졌는데, 친조카인 헌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1년 만에 왕위를 찬탈하여 1095년에 즉위하였다.

 

 

1096년 6촌 이내의 혼인을 금하였고, 1097년에는 주전관(鑄錢官)을 두고 주화를 만들어 통용하게 하였으며, 1101년에는 본국의 지형을 본떠서 은병〔闊口〕을 주조하고 이듬해에는 고주법(鼓鑄法:돈 만드는 법)을 제정하여 해동통보(海東通寶) 1만5000관을 만들어 문무양반과 군인들에게 분배하였다. 1099년 김위제의 주장에 따라 남경을 중시하고 남경개창도감(南京開創都監)을 두어 궁궐을 조영하게 하였다.

 

 

1102년에 예부에서 “우리나라가 예의로 교화하기는 기자(箕子)로부터 비롯되었으니, 원컨대 그 분묘를 찾고, 사당을 세워 제사하십시오.”라고 아뢰니 이에 따라 서경에 기자사(箕子祠)를 세웠다.

 

 

1103년 동여진의 추장 영가(盈歌)가 사신을 보내어 내조하였으나, 추장이 되면서 고려에 침입하였다. 같은해 2월에 임간(林幹)이 정주에서 패하였고, 3월에는 윤관(尹瓘)이 여진정벌을 꾀하였으나, 역시 이기지 못하고 화약을 체결하고 돌아왔다. 이에 따라 윤관의 주장으로 별무반(別武班)을 처음 설치하였다.

 

 

윤관은 “신이 여진에게 패한 것은 저들은 기병이고, 우리는 보병이므로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아뢰니 드디어 기병으로 구성된 신기군(神騎軍), 보병으로 구성된 신보군(神步軍), 승도(僧徒)들로 구성된 항마군(降魔軍)을 두어 별무반이라 칭하고, 여진정벌을 준비하게 하였다.

 

 

1105년 서경에 순행하여 동명왕묘(東明王廟)에 제사하고, 병이 들어 개경으로 돌아오다가 10월에 수레 안에서 죽으니 태자 '우'가 유조를 받들어 즉위하였다. 능은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판문리에 있는 영릉(英陵)이며, 시호는 명효(明孝)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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