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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7/04/21 사평왕후(思平王后)
  2. 2007/04/21 원덕태후(元德太后)
  3. 2007/04/21 광정태후(光靖太后)
  4. 2007/04/20 고려 제 23대왕 고종
  5. 2007/04/20 고려 제 22대왕 강종
한국역사/고려 2007/04/21 17:08 by 美
사평왕후(思平王后)
간략정보
시대 고려
생몰년 미상
본관 전주(全州)
활동분야
사평왕후(思平王后)에 대하여
사평왕후(思平王后)
생몰년 미상. 고려 강종의 비. 성은 이씨(李氏). 본관은 전주(全州).
무신란에 참여하여 권세를 잡은 이의방(李義方)의 딸이다.
아버지의 배경으로 태자비가 되었으나, 1174년(명종 4) 12월 이의방이 정중부(鄭仲夫)의 아들 균(筠) 등에 의하여 제거되자 ‘반역자의 딸을 동궁의 배필로 둘 수 없다.’는 명분으로 폐출당하였다.
강종과의 사이에 수령궁주(壽寧宮主)를 두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鄭容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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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고려 2007/04/21 17:03 by 美
원덕태후(元德太后)
간략정보
시대 고려
생몰년 ?-1239(고종26)
시호 정강(靖康)
활동분야
원덕태후(元德太后)에 대하여
원덕태후(元德太后)
?∼1239(고종 26). 고려 제22대왕 강종의 비.
종실 신안후 성(信安侯珹)의 딸이다. 왕실 동성을 피하기 위하여 유씨(柳氏)라 하였으나 누구의 성을 따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신안후는 현종의 5세손이며, 따라서 비와 강종과는 12촌간이 된다.
그러나 외가로는 더욱 가까운 외4촌 관계가 성립된다.
강종의 부왕인 명종과 신안후의 부인인 창락궁주(昌樂宮主)와는 남매간이며, 공주가 출가하여 낳은 딸을 다시 왕실에서 왕비로 맞아들인 것이다. 고려 역대왕들에게 이와같은 외4촌간의 혼인은 빈번하다.
1212년(강종 1)에 왕비로 봉하고 연덕궁주(延德宮主)라 하였으며, 소생으로는 고종이 있다.
능은 곤릉(坤陵)이다. 원덕태후로 추존되었고, 1253년에 정강(靖康)의 시호가 더해졌다.
참고문헌
高麗史. 〈鄭容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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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고려 2007/04/21 16:56 by 美
광정태후(光靖太后)
간략정보
시대 고려
생몰년 미상
시호 공평(恭平)
활동분야
광정태후(光靖太后)에 대하여
광정태후(光靖太后)
생몰년 미상. 고려 명종의 비. 성은 김씨. 종실인 강릉공 온(江陵公溫)의 딸이다. 동성을 피하기 위하여 김씨라 하였으나, 누구의 성을 따른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명종과 혼인하여 강종과 연희(延禧)·수안(壽安)두 공주를 낳았다. 의정왕후(義靜王后)로 봉하여졌으며, 강종이 즉위한 뒤에는 광정태후로 책봉되었다.
1253년(고종 40)에 공평(恭平)이라는 시호가 더하여졌다.
참고문헌
高麗史. 〈鄭容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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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고려 2007/04/20 18:35 by 美

고종(高宗)



1192(명종 22)∼1259(고종 46)

고려 제23대왕

재위 1213∼1259

본관은 개성(開城)

 

 

이름은 철, 초명은 진·질, 자는 대명(大命)·천우(天祐). 강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원덕태후 유씨(元德太后柳氏), 비는 희종의 딸 안혜태후 유씨(安惠太后柳氏)이다.

 

 

1212년(강종 1) 태자에 책봉되어 이듬해 강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그러나 46년의 재위기간 대부분은 최씨(崔氏)의 독재정치로 실권을 잡지 못하였으며, 잦은 민란과, 거란과 몽고의 침입에 대한 항쟁 등으로 국가적 위기를 겪어야 하였다.

 

1218년, 당시의 최고실력자 최충헌(崔忠獻)이 70세로 치사하려고 하자 궤장을 주어 계속 정사를 돌보게 하였으며, 이듬해 왕씨(王氏)의 성까지 주었다.

 

 

같은해 최충헌이 궤장과 사성을 반납하고 죽자, 그의 아들 우(瑀)가 실권을 잡고 정방(政房)을 통하여 백관의 인사를 전단(專斷)하였으므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258년 3월 대사성 유경(柳璥)과 별장 김인준(金仁俊)이 '의'를 살해함으로써 최씨정권이 무너지고 표면상으로는 왕권이 복구되었으나, 실권은 여전히 김준과 임연(林衍)부자에게 있었다.

 

 

대외적으로도 즉위 초기인 1216년부터 3년간 계속된 거란의 침입과 뒤이은 몽고의 침입으로 재위기간은 최대의 국난을 겪은 시기였다.

 

 

특히, 1231년부터 30여년간에 걸친 몽고의 침입에 대항하여 강도(江都:江華)로 천도하며 28년간 항쟁하였으나 막대한 인명손실과 국토의 황폐를 가져왔다.

 

 

그리고 1232년 대구 부인사(符仁寺)에 보관된 현종 때의 대장경판(大藏經板)이 소실되고, 1235년 경주의 황룡사구층탑이 소실되는 등 귀중한 문화재의 손실을 입었다. 그리하여 고종은 여러 차례의 강화교섭 끝에 1259년 몽고와 강화를 청하기 위하여 태자 전(뒤의 元宗)을 몽고에 보냈다.

 

 

그리고 무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몽고병으로 하여금 강화의 내성과 외성을 헐게 하였다. 이와같은 태자의 친조(親朝)와 성곽의 철거는 몽고에 대한 굴복을 뜻하는 것으로, 그뒤 고려는 몽고의 정치적 간섭을 받게 되었다.

 

 

한편, 1236년 몽고항쟁 당시 불력(佛力)에 의하여 몽고군을 격퇴하고자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 소실된 대장경판의 재각(再刻)에 착수하였으며, 이에 앞서 1227년 감수국사 평장사(監修國史平章事) 최보순(崔甫淳), 수찬관 김양경(金良鏡)·임경숙(任景肅)·유승단(兪升旦) 등으로 하여금 《명종실록》을 편찬하게 하여 사관(史館)과 해인사에 각각 보관하게 하였다.

 

 

능은 홍릉(洪陵)이며, 시호는 안효(安孝)이고, 1310년(충선왕 2) 충헌(忠憲)이 증시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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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고려 2007/04/20 18:33 by 美

강종(康宗)


1152(의종 6)∼1213(강종 2)

고려 제22대왕

재위 1211∼1213

본관은 개성(開城)

 

이름은 숙(璹)·정(貞)·오($오01), 자는 대화(大華). 명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광정태후 김씨(光靖太后金氏), 비는 원덕태후 유씨(元德太后柳氏)이다.

 

1171년(명종 1)관례를 올리고, 1173년 태자에 책봉되었다. 1197년 부왕과 함께 최충헌(崔忠獻)에게 쫓기어 강화도로 갔다가, 1210년(희종 6)에 소환되어 이듬해 수사공 상주국 한남공(守司空上柱國漢南公)에 책봉되었다. 같은해 12월 최충헌에게 옹립되어 폐위된 희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최씨 무단정치로 실권이 없었다.

 

왕의 생일을 광천절(光天節)이라 정하고, 왕모 의정왕후 김씨(懿靖王后金氏)를 광정태후로 추존하였다. 또한, 원자 진(瞋:뒤의 高宗)을 태자에 책봉하고, 왕비 유씨를 연덕궁주(延德宮主)로 하였다.

 

시호는 원효(元孝)이며, 장지는 후릉(厚陵:개풍군 현화리)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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