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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It&#039;s美</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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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ko</language>
		<pubDate>Thu, 19 Jun 2008 19:31:4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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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It&#039;s美</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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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거이(白居易) 장한가(長恨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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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역사상 수많은 사랑이야기 가운데, 절세미녀 양귀비(楊貴妃)와 절대 권력을 휘둘렸던 현종(玄宗)의 사랑 이야기만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있을까? 오늘은 백거이가 양귀비와 현종의 사랑을 노래한 시의 일부분을 보기로 한다. &lt;br /&gt;&lt;br /&gt;&lt;/FONT&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gt;&lt;FONT size=2&gt;&lt;FONT color=#666666&gt;回眸一笑百媚生,&amp;nbsp; 눈동자를 돌려 살며시 미소 지으면 끝없는 애교 발산하여, &lt;br /&gt;六宮粉黛無顔色. 수많은 후궁들의 빼어난 아름다움 빛을 잃게 되었네.&lt;br /&gt;&lt;br /&gt;後宮佳麗三千人&amp;nbsp; 후궁에는 삼천 명의 미인 있으나&lt;br /&gt;三千寵愛在一身&amp;nbsp; 삼천 명에게 갈 사랑을 홀로 독차지하였네&lt;/FONT&gt;.&lt;br /&gt;&lt;br /&gt;&lt;br /&gt;당 현종이 재위한 기간 중 전반기인 개원(開元) 연간에는 당 태종 이세민(李世民)에 버금갈만한 치적을 세워 &#039;명황(明皇)&#039;으로 까지 칭해졌으나 후반기로 갈수록 그의 명성은 퇴색하여 당의 멸망을 재촉하는 단초를 제공한 황제가 되었다. 당의 쇠퇴를 전적으로 현종이 양귀비에게 빠져 정사를 그르친 것으로 책임을 돌릴 수는 없을지라도, 현종의 양귀비에 대한 미혹이 정치를 함에 있어 판단과 통찰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lt;br /&gt;&lt;br /&gt;현종에게는 여러 가지 수식이 따라 다니는데, 그것들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현종은 당대 (唐代) 여러 황제 가운데 재위 기간이 가장 긴 황제였다. 그는 712년 황제의 자리에 올라 45년 동안 황제로 군림하였다. 현종은 또한 가장 장수한 황제였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그는 78세까지 장수하였다. 그리고 현종은 자신의 생일인 8월 5일을 경축일로 삼아 전국적으로 3일을 쉬도록 하였는데, 이 또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현종은 자녀를 가장 많이 둔 황제였다. 그에게는 30명의 아들과 29명의 딸 등 모두 59명의 자녀가 있었다.&lt;br /&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koreanhk.com/Chaomin/200804/68_02.jpg&quot; align=right name=zb_target_resize&gt;&lt;br /&gt;당 현종의 제위가 더할 나위 없이 공고해질 즈음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비인 무혜비(武惠妃)가 세상을 떴다. 황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오랫동안 애통해 하였다. 이 때 주위에서 현종에게 여러 여인을 추천하였지만 눈에 들어오는 자가 없었다. 얼마 후 한 여인이 현종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뜻밖에도 자신의 아들 수왕(壽王)의 비인 양옥환(楊玉環)이었다. 양옥환의 미모에 홀린 현종은 이것 저것 잴 여유가 없었다. 혜비가 죽은 지 1년도 되지 않아 현종은 자신의 비로 삼아 혜비가 받았던 예우로 똑같이 양귀비를 예우하는 동시에, 자신의 아들에게는 다시 다른 여인을 비로 간택해 주었는데, 이 때 현종은 이미 50대였으며 양귀비는 17살이었다. &amp;nbsp; &amp;nbsp; &amp;nbsp;&lt;br /&gt;양귀비의 미모는 백거이가 그의 시 &amp;lt;장한가&amp;gt;에서 묘사한 것처럼 현종을 홀리고도 남을 정도로 출중하였다. &lt;br /&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koreanhk.com/Chaomin/200804/68_03.jpg&quot; align=right name=zb_target_resize&gt;&lt;br /&gt;현종은 양귀비와의 사랑에 밤이 짧은 것은 안타까워하며, 조정에 나가 정치를 하는 것을 게을리하기 시작하였다. 이 즈음 잠재해 있던 여러 문제점들과 혼란이 한꺼번에 폭발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안록산(安祿山)의 난이다. 755년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켜 낙양을 공격하여 점령하고는 이듬해는 당시 수도였던 장안마저 점령하자, 현종은 양귀비를 데리고 신하들과 촉(蜀) 땅으로 피난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때문에 현종은 반란군을 피해 도주한 첫 번째 황제라는 불명예 또한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현종이 도주한 이튿날 행차가 마외(馬嵬)라는 지역에 다다랐을 때, 황태자 이형(李亨)은 여러 대신들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간신 양국충(楊國忠)을 처결하고, 아울러 현종에게 양귀비 또한 사형에 처하도록 압박하였다. 이미 권위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져 명목상 황제로 남아있던 현종은 피눈물을 흘리며 애통해 하면서 양귀비를 하얀 비단으로 목 졸라 황천길로 가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때 그녀의 나이 38 살이었다. &amp;nbsp; &amp;nbsp;&lt;br /&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koreanhk.com/Chaomin/200804/68_04.jpg&quot; align=left name=zb_target_resize&gt;&lt;br /&gt;&lt;br /&gt;&lt;/FONT&gt;&lt;/FONT&gt;&lt;FONT color=#666666&gt;&lt;br /&gt;&lt;br /&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君王掩面救不得 &amp;nbsp;황제는 차마 보지 못하고 얼굴 가리며 양귀비를 구하지 못하는데,&lt;br /&gt;回看血淚相和流 &amp;nbsp;뒤돌아보는 황제의 눈에는 피눈물 흘러내리네.&lt;/FONT&gt;&lt;/FONT&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FONT size=2&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gt;현종은 양귀비를 이곳 마외에 매장한 후 촉 땅으로 서둘러 피난 갔다. 양귀비의 묘는 원래 흙으로 덮여있던 토총이었으나, 이 흙에서 향기가 나고 피부에 좋다는 소문이 나 많은 사람들이 몰래 흙을 파가는 바람에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다. 이에 다시 봉분을 벽돌로 쌓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lt;/FONT&gt;&lt;br /&gt;&lt;br /&gt;&lt;/FONT&gt;</description>
			<category>歷代中國</category>
			<category>당대시</category>
			<category>백거이</category>
			<category>장한가</category>
			<author>美</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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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Jun 2008 16:46:2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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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張九齡(장구령)의 &lt;望月懷遠(망월회원)&g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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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오늘은 그리움을 읊은 시를 본다. 장구령이 지은 &amp;lt;망월회원&amp;gt;시는 한없는 그리움을 밝은 달에 기탁하고 있는데, 구체적이고도 선명한 예술 형상을 동원하여 독자를 감동시키는 힘이 매우 크다. 먼저 시를 읽어 보자.&lt;br /&gt;&lt;br /&gt;&lt;br /&gt;&lt;/FONT&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gt;&lt;FONT size=2&gt;&lt;FONT color=#666666&gt;海上生明月&amp;nbsp; 바다 위로 떠오른 밝은 달을&lt;br /&gt;天涯共此時&amp;nbsp; 하늘 끝에서 님도 보고 있겠지&lt;br /&gt;情人怨遙夜&amp;nbsp; 그리운 님은 긴 밤 원망하며&lt;br /&gt;竟夕起相思&amp;nbsp; 밤이 다 가도록 나만 생각하리라&lt;br /&gt;滅燭憐光滿&amp;nbsp; 촛불 끄니 방안 가득한 달빛 더욱 서러운데&lt;br /&gt;披衣覺露滋&amp;nbsp; 옷 걸치니 옷은 이미 이슬로 축축하네&lt;br /&gt;不堪盈手贈&amp;nbsp; 손에 가득 담아 님에게 보낼 수도 없으니&lt;br /&gt;還寢夢佳期&amp;nbsp; 다시 잠들어 꿈속에서나 만나야 하리 &lt;/FONT&gt;&lt;br /&gt;&lt;br /&gt;&lt;br /&gt;위 시에서 요야(遙夜)는 기나긴 밤을, 경석(竟夕)은 밤이 다가도록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불감(不堪)은 할 수 없다라는 뜻이다. &amp;nbsp; &lt;br /&gt;위 시는 고래로 많은 사람들의 높은 평가를 받아온 시이다. 특히 &quot;바다 위로 떠오른 밝은 달을 하늘 끝에서 님도 보겠지.&quot; 첫 두 구절은 지금도 자주 인용 되어지는 명구이다. 이어 나의 사랑하는 님 역시 내 생각에 전전반측하며 온 밤을 하얗게 지새울 것임을 이&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koreanhk.com/Chaomin/200802/58_02.jpg&quot; align=right name=zb_target_resize&gt;야기하고 있다. 님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갈수록 더욱 잠들지 못하는데 혹시라도 촛불이 너무 밝아 그런 것인가 하고 촛불을 끈다. 그러나 촛불을 끄자 방안 깊숙이 비치는 달빛이 더욱 밝게만 느껴진다. 밝게 비치는 달빛은 도리어 그리움만을 더욱 재촉할 뿐이다. 잠 못 들고 밖에 나가고자 옷을 걸치니 옷은 이미 이슬이 배어 축축하다. 마지막 두 구절은 더욱 절묘하다. 돌연 아름다운 달빛을 님에게 보내고 싶은 간절함이 마음 속에서 꿈틀거린다. 그러나 달빛을 손에 담아 보낼 수도 없어, 꿈속에서나마 그리운 님을 만나고자 침상에 돌아와 잠을 청한다. &amp;nbsp; &amp;nbsp;&lt;br /&gt;우리나라에도 달을 매개로 하여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많은데, 김용택 시인의 &amp;lt;그리움2&amp;gt;라는 시가 그 중 하나이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FONT&gt;&lt;/FONT&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gt;&lt;FONT size=2&gt;&lt;FONT color=#666666&gt;이 세상 그리움들이 모여&lt;br /&gt;달이 되었다고 한다.&lt;br /&gt;그래서 사람들은 문득 달을 보면&lt;br /&gt;참 달이 밝기도 하구나 라고 말한다.&lt;/FONT&gt; &lt;br /&gt;&lt;br /&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koreanhk.com/Chaomin/200802/58_03.jpg&quot; align=right name=zb_target_resize&gt;&lt;br /&gt;이 시를 지은 장구령(678~740)은 자가 자수(子壽) 혹은 박물(博物)로 소주(韶州) 곡강(曲江 : 현재 광동성(廣東省) 소관시(韶關市)) 사람이다. 경룡(景龍) 초(707) 진사에 등과하여 교서랑(校書郞)에 임명되었다. 이후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문인 재상 장열(張說)의 추천을 받아 중서사인(中書舍人)과 중서시랑(中書侍郞)을 거쳐 733년 재상이 되었고, 이듬해 중서령(中書令)으로 옮겼다. 사람됨이 현명하고 정직하였으며 조정의 중대한 정책의 시행에 참여하여 개원(開元) 연간의 저명한 재상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 아니라 문학 방면에서도 당시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개원 24년(736) 이임보 (李林甫)에게 미움을 받아 재상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후로 조정은 날로 부패하여 &#039;개원지치(開元之治)&#039;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이듬해 형주장사 (荊州長史)로 폄적당했다가, 몇 년 후 세상을 떴다. 그의 시호는 문헌공(文獻公)이다.&lt;/FONT&gt;&lt;/FONT&gt;&lt;br /&gt;</description>
			<category>歷代中國</category>
			<category>당대 시</category>
			<category>망월회원</category>
			<category>장구령</category>
			<author>美</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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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Jun 2008 16:43:0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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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陸龜蒙(육구몽)의 吳宮懷古(오궁회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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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중국 절강성 항주에서 남쪽으로 90여 킬로미터 떨어진 절강성 주지라는 곳이있다. &amp;nbsp;그곳은 중국 역사상 유명한 미인인 서시(西施)의 고향이다. &amp;nbsp;그곳은 서시고리(西施故里)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유적지가 복원되어 많은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lt;br /&gt;&lt;br /&gt;&lt;br /&gt;香徑長洲盡棘叢&amp;nbsp; 향경과 장주에는 온통 가시덤불&lt;br /&gt;奢雲艶雨只悲風&amp;nbsp; 사치와 호색의 오왕은 간 데 없고 슬픈 바람 뿐&lt;br /&gt;吳王事事堪亡國&amp;nbsp; 나라를 망친 것은 모두 오왕 때문이지 &amp;nbsp;&lt;br /&gt;未必西施勝六宮&amp;nbsp; 서시가 다른 비보다 예뻐서가 아니라네&lt;br /&gt;&lt;br /&gt;&lt;br /&gt;&lt;br /&gt;위 시는 춘추전국 시대의 오(吳)나라 멸망의 원인이 서시(西施)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개인적인 사치와 호색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 &amp;nbsp;&lt;br /&gt;위에서 오궁(吳宮)은 오왕 부차가 서시를 위해 지어준 궁궐이며, 향경(香徑)은 오왕 부차가 서시를 위해 건설한 수로로, 서시는 이 수로에 배를 띄우고 꽃을 땄다. &amp;nbsp;장주(長洲)는 장주원 (長洲苑)으로 오왕 부차의 사냥터를 말한다. 그 화려했던 날들을 호령했던 오왕도 보이지 않고, 당시의 호화스런 수로와 장주는 이미 폐허가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amp;nbsp;육궁(六宮)은 황후와 비가 거주하던 곳으로 여기에서는 그곳에 거처하던 후와 비를 일컫는다. &amp;nbsp;이 구절에서는 서시에게 오왕이 멸망한 죄를 물을 수 없음을 확실히 말하고 있다. &amp;nbsp;&lt;br /&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koreanhk.com/Chaomin/200801/70_02.jpg&quot; align=right name=zb_target_resize&gt;&lt;br /&gt;서시는 옛 월(越)나라의 여인으로 남의 빨래를 해주며 생계를 이어가던 여인이었다. &amp;nbsp;그녀는 왕소군(王昭君), 초선 (貂蟬), 양귀비(楊貴妃)와 더불어 중국의 4대 미녀에 속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그 중 서시를 으뜸으로 쳐서 미의 화신으로 간주하고 있다. &amp;nbsp;서시를 이야기하자면 늘 침어(沈魚)라는 고사가 생각나는데, 이는 서시가 강가에서 빨래할 때 맑은 강물 위에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가 비치자 물고기조차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이 나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려 강바닥에 가라앉고 말았다는 데에서 유래된다. &amp;nbsp; &amp;nbsp; &lt;br /&gt;당시 서시의 월나라는 오나라에게 대패하여 월왕 구천(句踐)과 그의 신하 범려(范 &amp;nbsp; )는 인질로 오나라에 잡혀가게 되었다. &amp;nbsp;구천은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부차에게 짐짓 매우 충성스런 태도를 고수하였다. &amp;nbsp;부차가 병이 났을 때 어떠한 약을 써도 듣지 않자, 부차의 대변을 직접 맛보고 처방을 내려주면서까지 자신에게는 추호도 원망함과 복수할 마음이 없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amp;nbsp;이에 안심한 부차는 구천과 범려를 다시 월나라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amp;nbsp;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오나라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며, 안으로 부국강병에 힘쓰는 한편 미인계를 써서 오왕 부차를 무너뜨리고자 미인 서시를 부차에게 바쳤던 것이다. 아름다운 서시가 오나라로 들어오자 예상했던대로 오왕 부차는 서시의 치마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음락에만 빠져 국사를 돌보지 않게 되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월왕 구천은 군사를 출동시켜 오나라를 함락시키고 복수를 할 수 있었다.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lt;br /&gt;위와 같이 물고기도 넋을 빼고 바라보던 아름다운 서시를 항주 서호에 비유하여 서호의 명성을 더욱 드높인 문인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아닌 송대의 소동파(蘇東坡)이다. &amp;nbsp;그가 서호에 대해 읊은 시는 서호를 노래한 수많은 문인들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절창으로 손꼽히고 있다. &amp;nbsp;비 갠 후에 서호 가에서 술을 마시는 정취를 읊은 그의 시를 또한 여기에 소개한다.&lt;br /&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koreanhk.com/Chaomin/200801/70_03.jpg&quot; align=right name=zb_target_resize&gt;&lt;br /&gt;&lt;br /&gt;&lt;br /&gt;水光晴方好 &amp;nbsp;호숫물 반짝거려 맑은 날 좋더니,&lt;br /&gt;山色空蒙雨亦奇 &amp;nbsp;산 어둑 어둑 비 내려도 기이하네.&lt;br /&gt;欲把西湖比西子 &amp;nbsp;서호를 서시에 비유하니,&lt;br /&gt;淡粧濃抹總相宜 &amp;nbsp;옅은 화장 짙은 화장 모두 제격이네.&lt;br /&gt;&lt;br /&gt;&lt;br /&gt;소동파의 위 시는 서호가 어떠한 날씨이든 나름대로의 운치를 지니고 있음을 서시의 자태를 빌어 이야기하고 있다.&lt;br /&gt;위 시의 작자인 육구몽은 만당(晩唐)의 시인으로 자는 노망(魯望)이고 號는 강호산인(江湖山人), 천수자(天隨子), 보리선생(甫里先生)등으로 불렸다. 소주(蘇州)의 명문 출신으로 어렸을 때 이미 육경 (六經)에 능통하였으며, 특히『춘추(春秋)』에 조예가 깊었다. &amp;nbsp;함통(咸通) 연간에 진사시험에 낙방한 후 다시 응시하지 않고 송강(松江)의 보리(甫里) 에 은거하여 농경 생활에 힘쓰는 한편 시를 즐기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였다.&lt;/FONT&gt; &lt;br /&gt;</description>
			<category>歷代中國</category>
			<category>당대 시</category>
			<category>오궁회고</category>
			<category>육구몽</category>
			<author>美</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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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Jun 2008 16:40:5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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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王昌齡(왕창령)의 &lt;長信秋詞(장신추사)&g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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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왕창령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위 작품은 총애를 잃은 궁녀의 고통과, 그들에 대한 동정을 표현하고, 나아가 여인에 탐닉하여 국사를 그르치는 황제를 풍자하고 계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하겠다. &lt;br /&gt;&lt;br /&gt;시의 첫 두 구절에서는 매일 아침 비를 들고 청소 등 판에 박힌 일을 해야 하는 궁녀의 무료함과 황제의 사랑을 받지 못해 갈피잡지 못하는 궁녀의 심사를 서술하고 있다. &amp;nbsp;이어 뒤 두 구절에서는 반첩여의 고사를 인용하여 이 궁녀의 서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lt;br /&gt;위에서 소양(昭陽)은 한나라 때의 궁전인 소양전으로 한(漢) 나라 황제인 성제(成帝)와 조비연(趙飛燕) 자매가 기거했던 곳이다. &amp;nbsp;고대에는 태양으로 황제를 비유했기에 위 시구 중 일영(日影)은 황제의 은혜를 말하는 것이다. &amp;nbsp;까마귀는 오히려 소양전 위를 날며 소양전의 햇빛을 받을 수 있지만, 자신은 장신궁(長信宮) 깊은 곳에 기거하기 때문에 황제를 한번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옥 같은 얼굴이 새까만 까마귀만도 못함을 한탄하고 있다. &amp;nbsp; &amp;nbsp;&lt;br /&gt;&lt;br /&gt;반첩여라는 여인은 누구인가? 반첩여는 한나라의 성제가 막 즉위할 때 후궁으로 뽑혀 들어온다. &amp;nbsp;처음에는 소사(少使)라는 관직에 임명되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황제의 큰 총애를 받아 첩여가 되어 황제의 아들을 낳았으나, 수개월 &amp;nbsp;만에 그 아들을 잃고 만다. &amp;nbsp;그녀와 성제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가 얼마나 현명하고 법도를 잘 지키는 여인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amp;nbsp;&lt;br /&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koreanhk.com/Chaomin/200711/96_02.jpg&quot; align=right name=zb_target_resize&gt;&lt;br /&gt;어느 날 성제가 궁궐의 후정에서 유람할 때, 황제는 첩여에게 수레를 같이 타고 갈 것을 권유하지만, 첩여는 사양하며 &quot;옛 그림을 보면, 어진 군주들은 모두 유명한 신하들을 곁에 두었으나, 하·은·주의 마지막 왕들은 곁에 사랑하는 여자들을 두었습니다. &amp;nbsp;지금 수레를 같이 타고자 하신다면, 그들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quot;라는 말로 황제의 권유를 사양하였다. 황제는 그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는 더 이상 권유를 할 수 없었다. 태후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quot;옛날 번희(樊姬)가 있었다면, 지금은 반첩여가 있구나.&quot;라는 말로 첩여의 행동을 칭송해마지 않았다. &amp;nbsp;번희란 여인은 춘추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의 비로 장왕이 사냥에 탐닉하였을 때 번희가 수차례 그만 둘 것을 간하였으나 장왕이 말을 듣지 않자, 그녀는 그 이후로 짐승의 고기를 일절 입에 대지 않아, 왕이 잘못을 고치고 정사에 힘쓰도록 유도했던 여인이다. &amp;nbsp; &lt;br /&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koreanhk.com/Chaomin/200711/96_03.jpg&quot; align=right name=zb_target_resize&gt;&lt;br /&gt;첩여는 이후에도 성왕들의 예법을 준칙으로 삼아 조심스럽게 행동함으로써 안에서 황제를보필하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황제는 점점 여자에 탐닉하였다. &amp;nbsp;얼마 후 미천한 출신인 조비연 자매가 국가의 예의 법도를 무시하고 점점 황제의 사랑을 차지하게 된다. &amp;nbsp;이에 반첩여와 당시의 황후 허황후는 모두 총애를 잃고 황제를 만날 기회조차 없게 되고, 급기야 조비연은 허황후와 반첩여가 주술로 황제의 환심을 사고자 하고, 후궁들을 저주하고, 황제까지 비방한다고 참소하였다. &amp;nbsp;허황후는 이 때문에 폐위되었고 이어 황제는 이 사실을 반첩여에게 추궁하자, 첩여가 대답하기를, &quot;소첩이 듣기에 삶과 죽음은 명에 달려 있고, 부와 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저는 몸을 닦고 마음을 바르게 했어도 여전히 복을 받지 못했는데, 사악한 욕심을 부려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만약 귀신이 안다면 신하의 도리가 아닌 저주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만약 귀신이 모른다면 저주한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amp;nbsp;이 때문에 저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quot; 라고 대답하였다. &amp;nbsp;황제는 그녀의 대답에 수긍을 하고 그녀의 행실을 칭송하였지만, 첩여는 조씨 자매의 교만과 투기 때문에 위기가 곧 자기에게 닥칠 것을 예상하고는 장신궁에서 황태후를 모실 것을 자원하였고, 황제는 이를 허락하였다. &amp;nbsp;그 후 첩여는 장신궁으로 물러나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amp;nbsp; &amp;nbsp;&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FONT size=3&gt;眞成薄命久尋思&lt;/FONT&gt;&amp;nbsp; 참으로 박명한 신세되어 오랜 그리움에 헤매이다 &lt;br /&gt;&lt;FONT size=3&gt;夢見君王覺後疑&lt;/FONT&gt;&amp;nbsp; 꿈속에서 임금님을 뵈옵곤 깨고 나니 의심스럽네 &lt;br /&gt;&lt;FONT size=3&gt;火照西宮知夜飮&lt;/FONT&gt;&amp;nbsp; 불빛은 서궁을 비추니 저녁 향연 있음을 알겠건만 &lt;br /&gt;&lt;FONT size=3&gt;分明複道奉恩時&lt;/FONT&gt;&amp;nbsp; 성은(聖恩)을 받들던 때의 통로만이 훤히 빛나네&lt;br /&gt;&lt;br /&gt;&amp;nbsp; &lt;br /&gt;위 시를 지은 왕창령 (698~756)은 서안 사람이다. 그는 용표(龍標 : 지금의 湖南省 黔陽縣)로 귀양간 적이 있어 왕용표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용표에 가면 그의 자취를 많이 볼 수 있다. &lt;br /&gt;그의 시는 구성이 긴밀하고 구상이 청신하였으며, 특히 7언절구에서 뛰어난 작품이 많아 &#039;칠절성수 (七絶聖手)&#039;라 칭해지기도 한다. &amp;nbsp;위의 시 역시 7언절구의 형식을 하고 있다.&lt;/FONT&gt;&lt;br /&gt;&lt;br /&gt;&lt;br /&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koreanhk.com/Chaomin/200711/98_01.jpg&quot; align=center name=zb_target_resize&gt;&lt;br /&gt;</description>
			<category>歷代中國</category>
			<category>당대 시</category>
			<category>왕창령</category>
			<category>장신추사</category>
			<author>美</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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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Jun 2008 16:38:5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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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高適(고적)의 除夜作(제야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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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amp;nbsp;나이가 들면서 한 해를 보내는 심사가 예년과는 다르다.&lt;br /&gt;고향을 떠나 이국에서 또 한 해를 보내야만 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리라. &lt;br /&gt;섣달 그믐날 고향의 가족을 그리며 쓴 고적의 제야작 (除夜作)의 심정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FONT size=3&gt;旅館寒燈獨不眠 &amp;nbsp;&amp;nbsp; 객사의 차가운 불빛 아래 홀로 잠 못 이루고&lt;br /&gt;客心何事轉悽然 &amp;nbsp; &amp;nbsp;나그네 마음이 왜 이리도 처량해질까?&lt;br /&gt;故鄕今夜思千里 &amp;nbsp; &amp;nbsp;고향의 식구들 오늘밤 천리 밖 나를 생각하리니&lt;br /&gt;霜偸明朝又一年 &amp;nbsp; &amp;nbsp;서리 같은 귀밑머리 내일이면 또 새해네&lt;br /&gt;&lt;/FONT&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koreanhk.com/Chaomin/200701/80_02.jpg&quot; align=left name=zb_target_resize&gt;위 시는 고적이 섣달 그믐날에 고향의 식구를 그리며 지은 시다. &amp;nbsp;제야(除夜)는 섣달 그믐날 밤으로 제석(除夕)이라고도 한다. &amp;nbsp;상빈(霜偸)은 서리 같이 하얀 머리카락을 일컫는다. &amp;nbsp;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즐거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족과의 이별로 도리어 처량해지는 자신을 주체할 길이 없음을 알 수 있다. &amp;nbsp;자신의 향수를 직접 서술하지 않고, 고향의 식구들이 자신을 생각하는 것으로 설정하여 자신의 간절한 향수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고 하겠다.&lt;br /&gt;위 시의 작자인 당(唐)나라 시인 고적(高適)을 떠올리면 곧 지금의 티벳이 생각난다. &amp;nbsp;아직도 원시적인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어 누구나 한번쯤은 가고 싶어 하는 땅 &amp;nbsp;티벳.&lt;br /&gt;&lt;br /&gt;고적은 753년 하서절도사(河西節度使)였던 명장 가서한(哥舒翰)의 막부(幕府)에 들어가 현재의 티벳 지역에 있었던 토번(吐蕃)이라는 나라를 격파하여 구곡(九曲)이라는 지역을 탈환하는 전투를 직접 목도하게 되고, 그것을 구곡사(九曲詞)라는 시로 칭송을 한 바 있다. &lt;br /&gt;구곡이란 지역은 지금의 칭하이성(靑海省) 바옌시엔(巴燕縣) 일대로 수초가 무성하여 목축을 하기에 적당했는데, 당과 토번은 이곳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각자의 통치 하에 두려고 자주 충돌하였다. &amp;nbsp;710년 당으로부터 이곳을 차지한 토번은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자주 하서주랑(河西走廊)을 단절시켜서 안서사진(安西 四鎭)을 고립시키고 동쪽으로 진출하여 당을 더욱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amp;nbsp;당은 753년에 이르러서야 가서한 장군이 토번에게 빼앗겼던 구곡을 모두 되찾게 되었던 것이다.&lt;br /&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koreanhk.com/Chaomin/200701/80_03.jpg&quot; align=right name=zb_target_resize&gt;&lt;br /&gt;당나라와 토번의 관계가 매우 우호적이었던 때는 태종(太宗) 이세민(李世民) 시절이었다. &lt;br /&gt;당시 토번의 국왕은 송찬간포(松贊干布 : 617-650 재위)라는 인물이었는데, 그는 청장(靑藏)고원 내의 여러 장족을 통일한 후, &amp;nbsp;632년 지금의 중국 시장(西藏) 라싸에 수도를 정하고 토번왕조를 세웠다. &amp;nbsp;그는 왕이 된 후 국가를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 자신과 이웃나라의 공주들과의 혼인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amp;nbsp;그는 우선 서쪽에 있는 네팔 왕국의 공주와 결혼을 한 후, 640년 자신의 신하인 녹동찬(祿東贊)을 당나라에 파견하여 당나라의 공주와의 결혼을 요청하였다. &amp;nbsp;녹동찬이 결혼 요청 사절로 당나라에 들어온 그 때, 주변의 천축국(天竺國), 대식국(大食國) 등 다른 여러 나라도 사신을 파견하여 당나라의 수도는 여러 나라의 사신들로 북적거렸다. &amp;nbsp;당태종은 여러 나라에서 온 사신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었기에, 평범한 사람들은 미처 생각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그들에게 제시하여, 지혜롭게 문제를 푼 사신의 나라에 공주를 시집보내도록 결정하였다.&lt;br /&gt;&lt;br /&gt;당태종은 그들에게 총 6문제의 난해한 문제를 출제하였는데, 녹동찬만이 그 문제를 순조로이 풀 수 있었다. &amp;nbsp;당태종은 토번에서 온 사신의 지혜를 치하하는 한편, 토번의 문화 수준에 만족해하고는 토번의 국왕과 당나라의 문성공주(文成公主)의 결혼을 결정하였다. &amp;nbsp;이것이 바로 역사상 유명한 장족과 한족의 아름다운 혼사이다.&lt;br /&gt;당태종이 출제한 문제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중 대표적인 문제를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amp;nbsp;독자 여러분들도 풀어보시기 바란다. &lt;br /&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koreanhk.com/Chaomin/200701/80_04.jpg&quot; align=left name=zb_target_resize&gt;&lt;br /&gt;첫째, 구슬에 아홉 개의 구멍이 굽이굽이 뚫어져 있는데, 어떻게 이 곳에 명주실을 꿸 수 있는가? &amp;nbsp;둘째, 100마리의 어미 말과 100마리의 새끼 말이 있는데, 100쌍의 어미 말과 새끼 말을 완벽하게 짝지을 수 있는가? &amp;nbsp;셋째, 위와 아래의 굵기가 동일한 통나무가 있는데, 어느 쪽이 뿌리 부분이고 어느 쪽이 가지 부분인가? &amp;nbsp;넷째, 300명의 궁녀에게 똑같은 옷을 입히고 그 중에서 문성공주를 찾도록 하는 문제가 그 것들이다. &amp;nbsp;&lt;br /&gt;&lt;br /&gt;641년 당태종은 예부상서인 이도종(李道宗)으로 하여금 16세인 문성공주를 호위하여 티벳 라싸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amp;nbsp;이 결혼으로 당과 토번 사이에는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전쟁이 드물어지고 상인들과 사신들의 왕래가 빈번해지게 되었다.&lt;br /&gt;멀게만 느껴졌던 티벳도 청장(靑藏)철도가 최근 개통되면서 이젠 우리의 곁에 가까이 와 있다. &amp;nbsp;1300여년 전 문성공주가 실마리를 푼 중국과 티벳간의 왕래와 우호가 올해 드디어 그 의미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lt;br /&gt;여러분 모두 고향을 생각하며 따뜻한 가슴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길 빈다.&lt;/FONT&gt;&lt;br /&gt;&lt;br /&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koreanhk.com/Chaomin/200701/80_05.jpg&quot; align=center name=zb_target_resize&gt;&lt;br /&gt;&lt;br /&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글 최경진 (백석대학교 교수)&lt;br /&gt;&lt;/FONT&gt;&lt;A href=&quot;http://www.koreanhk.com/&quot;&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http://www.koreanhk.com/&lt;/FONT&gt;&lt;/A&gt;</description>
			<category>歷代中國</category>
			<category>고적</category>
			<category>당대 시</category>
			<category>제야작</category>
			<author>美</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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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Jun 2008 16:22:5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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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hai restaurants @ HK</title>
			<link>http://elesther.tistory.com/entry/Thai-restaurants-HK</link>
			<description>&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STRONG&gt;Ayuthaiya&lt;/STRONG&gt;&lt;br /&gt;Shop G23, Festival Walk, Kowloon Tong, Kowloon&lt;br /&gt;Tel 3105 5055&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Cafe Siam&lt;/STRONG&gt;&lt;br /&gt;40-42 Lyndhurst Terrace, Central&lt;br /&gt;Tel 2851 4803 &lt;br /&gt;Fax 2851 3545&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Chili Club&lt;/STRONG&gt;&lt;br /&gt;1/F 88 Lockhart Road, Wanchai, Hong Kong&lt;br /&gt;Tel 2527 2872&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Chilli n Spice (Causeway Bay)&lt;/STRONG&gt;&lt;br /&gt;G/F Miami Mansion, 13-15 Cleveland Street, Causeway Bay, Hong Kong&lt;br /&gt;Tel 2504 3930&lt;br /&gt;Fax 2511 0326&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Chilli n Spice (Festival Walk)&lt;/STRONG&gt;&lt;br /&gt;UG36 Festival Walk, 80 Tat Chee Avenue, Kowloon Tong, Kowloon &lt;br /&gt;Tel 2265 8188&lt;br /&gt;Fax 2265 7336&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Chilli n Spice (Gold Coast)&lt;/STRONG&gt;&lt;br /&gt;Shop R1 G/F Marina Magic Shopping Mall, Gold Coast, Tuen Mun, New Territories&lt;br /&gt;Tel 3194 3823&lt;br /&gt;Fax 3194 3820&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Chilli n Spice (Sha Tin)&lt;/STRONG&gt;&lt;br /&gt;191-193 level 1 Phase 1, New Town Plaza, Sha Tin, NT&lt;br /&gt;Tel 2473 0168&lt;br /&gt;Fax 2473 0893&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Chilli n Spice (Stanley)&lt;br /&gt;&lt;/STRONG&gt;101 Murray House, Stanley, Hong Kong&lt;br /&gt;Tel 2899 0147&lt;br /&gt;Fax 2813 5361&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Chilli n Spice (Tseung Kwan O)&lt;br /&gt;&lt;/STRONG&gt;1035-1038 Level 1, Metro City Phase II, Tseung Kwan O, New Territories&lt;br /&gt;Tel 3194 3823&lt;br /&gt;Fax 3194 3820 &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Chilli n Spice (Tuen Mun)&lt;br /&gt;&lt;/STRONG&gt;DD124 Lot 2289 Hung Shui Kui, Tuen Mun, NT&lt;br /&gt;Tel 2473 0168&lt;br /&gt;Fax 2473 0893&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Chilli n Spice (Western)&lt;br /&gt;&lt;/STRONG&gt;Shop 117, Podium Level 1, The Westwood, 8 Belcher&#039;s Street, Hong Kong&lt;br /&gt;Tel 2542 7777&lt;br /&gt;Fax 2542 7721&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Good Luck Thai&lt;/STRONG&gt;&lt;br /&gt;G/F 13 Wing Wah Lane, Lan Kwai Fong, Hong Kong&lt;br /&gt;Tel 2877 2971&lt;br /&gt;Fax 2511 1723&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Her Thai Restaurant&lt;/STRONG&gt;&lt;br /&gt;Shop 1 Promenade level, Tower 1, China HK City, 33 Canton Road, Tsim Sha Tsui, Kowloon&lt;br /&gt;Tel 2735 8898 &lt;br /&gt;Fax 2736 9883&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Klong Bar and Grill&lt;/STRONG&gt;&lt;br /&gt;G/F&amp;amp;1/F, 54-62 Lockhart Road, Wanchai, Hong Kong&lt;br /&gt;Tel 2217 8330&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Lotus Thai Restaurant&lt;/STRONG&gt;&lt;br /&gt;C-D Beverly House, 93-107 Lockhart Road, Wanchai, Hong Kong&lt;br /&gt;Tel 2866 0228&lt;br /&gt;Fax 2865 5073&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Mekong&lt;br /&gt;&lt;/STRONG&gt;Kimberley Plaza, Knutsford Terrace, Tsim Sha Tsui, Kowloon&lt;br /&gt;Tel 2316 2288 &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Pad Thai&lt;/STRONG&gt;&lt;br /&gt;2/F One Capital Place, 18 Luard Road, Wanchai, Hong kong&lt;br /&gt;Tel 2126 7900&lt;br /&gt;Fax 2126 7902&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Phukets &lt;br /&gt;&lt;/STRONG&gt;LG/F Shop D 30-32 Robinson Road, Mid-levels, Midlevels&lt;br /&gt;Tel 2868 9672&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Shek O Chinese-Thai Seafood Restaurant&lt;br /&gt;&lt;/STRONG&gt;303 Shek O Village, Hong Kong&lt;br /&gt;Tel 2809 4426&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Soho Spice &lt;br /&gt;&lt;/STRONG&gt;G/F 47 Elgin Street, Soho, Hong Kong&lt;br /&gt;Tel 2521 1600 &lt;br /&gt;Fax 2521 2600&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Spice Market&lt;/STRONG&gt;&lt;br /&gt;Marco Polo Prince Hotel, Harbour City, Canton Road, Tsim Sha Tsui, Kowloon&lt;br /&gt;Tel 2113 6046 &lt;br /&gt;Fax 2113 0055&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Sukhothai&lt;/STRONG&gt;&lt;br /&gt;Level 2 Stanley Beach Villa, 90 Stanley Main Street, Stanley, Hong Kong&lt;br /&gt;Tel 2899 0999 &lt;br /&gt;2899 0775&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Sweet Basil Thai Cuisine&lt;/STRONG&gt;&lt;br /&gt;3B, G/F Site 4 Whampoa Garden, Hung Hom, Kowloon&lt;br /&gt;Tel 2356 1182&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Sweet Basil Thai Cuisine&lt;/STRONG&gt;&lt;br /&gt;Shop C/D 6/F Lee Theatre Plaza, 99 Percival Street, Causeway Bay, Hong Kong&lt;br /&gt;Tel 2890 1993&lt;br /&gt;&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STRONG&gt;Taste Good Thai&lt;/STRONG&gt;&lt;br /&gt;1/F 16 Wing Wah Lane, Lan Kwai Fong, Hong Kong&lt;br /&gt;Tel 2523 9543&lt;br /&gt;Fax 2869 9692&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Thai Basil&lt;/STRONG&gt;&lt;br /&gt;Shop 5, LG/F Pacific Place, 88 Queensway, Admiralty, Hong Kong&lt;br /&gt;Tel 2537 4682 &lt;br /&gt;Fax 2918 9418&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Thai Farmers Restaurant&lt;/STRONG&gt;&lt;br /&gt;G/F King Tao Building, 98 Lockhart Road, Wanchai, Hong Kong&lt;br /&gt;Tel 2520 6607&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Thai Lemongrass&lt;/STRONG&gt;&lt;br /&gt;3/F California Tower, 30-32 Lan Kwai Fong, Hong Kong&lt;br /&gt;Tel 2905 1688&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Thai Orchid&lt;/STRONG&gt;&lt;br /&gt;G/F 39 Tong Chong Street, Tai Koo Place, Quarry Bay&lt;br /&gt;Tel 2856 9848&lt;br /&gt;Fax 2856 9784&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Thai Simple Kitchen&lt;/STRONG&gt;&lt;br /&gt;G/F 379-389 Jaffe Road, Causeway Bay, Hong Kong&lt;br /&gt;Tel 2893 5777&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Tom Yums Thai&lt;br /&gt;&lt;/STRONG&gt;44 Hennessy Road, Wanchai, Hong Kong&lt;br /&gt;Tel 2527 2568&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Touch of Spice&lt;/STRONG&gt;&lt;br /&gt;1/F Knutsford, 10 Knutsford Terrace, Tsim Sha Tsui, Kowloon&lt;br /&gt;Tel 2312 1118 &lt;br /&gt;Fax 2312 6163&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Tuk Tuk Thai&lt;/STRONG&gt;&lt;br /&gt;G/F 30 Graham Street, Soho, Hong Kong&lt;br /&gt;Tel 2542 2760&lt;br /&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lt;br /&gt;&lt;STRONG&gt;Wyndham Thai&lt;/STRONG&gt;&lt;br /&gt;G/F Shop 3 The Centrium, 60 Wyndham Street, Central&lt;br /&gt;Tel 2869 6216&lt;br /&gt;Fax 2521 6141&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A href=&quot;http://www.eatdrinkhongkong.com/&quot;&gt;http://www.eatdrinkhongkong.com/&lt;/A&gt;&lt;br /&gt;&lt;/FONT&gt;&lt;/P&gt;</description>
			<category>먹.거.리</category>
			<category>Ayuthaiya</category>
			<category>Cafe Siam</category>
			<category>Chili Club</category>
			<category>Chilli n Spice</category>
			<category>Good Luck Thai</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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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Klong Bar and Grill</category>
			<category>Lotus Thai Restaurant</category>
			<category>Mekong</category>
			<category>Pad Thai</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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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Shek O Chinese-Thai Seafood Restaurant</category>
			<category>Soho Spice</category>
			<category>Spice Market</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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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Taste Good Thai</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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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美</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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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4 Jun 2008 13:24:3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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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치매를 예방하는 7가지 방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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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서울=연합뉴스) 인류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lt;/FONT&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amp;amp;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amp;q=%BE%CB%C3%F7%C7%CF%C0%CC%B8%D3&amp;amp;nil_profile=newskwd&amp;amp;nil_id=v20080527111915589&quot; target=new&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알츠하이머&lt;/FONT&gt;&lt;/A&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노인성 치매) 환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영국의 경우 2025년께에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1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lt;br /&gt;&lt;br /&gt;이에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6일 간단한 생활습관의 변화만으로도 노인성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7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lt;br /&gt;&lt;br /&gt;▲두뇌 훈련을 하라 = 뇌는 사용하지 않으면 금방 둔해진다. 따라서 낱말맞추기 퍼즐이나 다소 어려운 내용의 책을 읽는 등 끊임없는 두뇌 훈련이 필요하다. 최근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039;&lt;/FONT&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amp;amp;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amp;q=%B5%CE%B3%FA+%C6%AE%B7%B9%C0%CC%B4%D7+%B0%D4%C0%D3&amp;amp;nil_profile=newskwd&amp;amp;nil_id=v20080527111915589&quot; target=new&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두뇌 트레이닝 게임&lt;/FONT&gt;&lt;/A&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039; 같은 것도 뇌의 유연성과 활동 증대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lt;br /&gt;&lt;br /&gt;실제로 지난 2003년 미국에서 실시된 한 연구에 따르면 1주일에 4일 정도 낱말맞추기 퍼즐을 한 사람은 1주일에 1번 이 퍼즐을 푼 사람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lt;br /&gt;&lt;br /&gt;▲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라 = 꾸준한 운동은 뇌 건강과 직결된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뇌에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될 뿐 아니라 전반적인 심장 혈관계도 강화되기 때문이다. &lt;br /&gt;&lt;br /&gt;스웨덴에서 실시된 한 연구에 따르면 규칙적인 운동은 알츠하이머 발병 확률을 50% 가량 낮춰준다. 반면 뚱뚱한 사람은 노인성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남들보다 70%나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lt;br /&gt;&lt;br /&gt;▲진통제를 적당히 복용하라 = 일각에서는 아스피린 같은 진통제나 &lt;/FONT&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amp;amp;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amp;q=%C4%DD%B7%B9%BD%BA%C5%D7%B7%D1+%C0%FA%C7%CF%C1%A6&amp;amp;nil_profile=newskwd&amp;amp;nil_id=v20080527111915589&quot; target=new&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콜레스테롤 저하제&lt;/FONT&gt;&lt;/A&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 소염제 등이 알츠하이머 발병률을 낮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lt;br /&gt;&lt;br /&gt;미국 보스턴대 의과대학의 스티븐 블라드 박사는 소염진통제 이부프로펜을 5년 이상 복용하면 노인성 치매 위험이 40% 가량 줄어든다고 밝혔다. &lt;br /&gt;&lt;br /&gt;또 워싱턴대 의과대학의 게일 리 교수도 스타틴 등의 콜레스테롤 저하제를 복용하면 노인성 치매의 특징적 증상인 메타 아밀로이드 플라크의 형성이 억제돼 치매 발병률이 80%까지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lt;br /&gt;&lt;br /&gt;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약품들의 치매 억제효과가 아직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데다가 무분별한 복용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되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lt;br /&gt;&lt;br /&gt;▲사회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라 = 외로움은 치매의 가장 큰 적 가운데 하나다. 홀로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노년에 알츠하이머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lt;br /&gt;&lt;br /&gt;실제로 스웨덴의 한 연구진은 사회활동에 활발히 참여해온 이들은 혼자 살아온 사람들에 비해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60%나 낮았다고 밝혔다. &lt;br /&gt;&lt;br /&gt;친구나 가족을 만나는 것은 TV 앞에 혼자 앉아있는 시간을 줄인다는 장점도 있다. 혼자서 TV를 너무 오랜 시간 시청하는 것은 뇌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lt;br /&gt;&lt;br /&gt;▲대마초를 피우지 말라 = 대마초에 함유된 특정 성분이 치매 발병의 요인인 독성 단백질 생성을 억제하고 염증을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lt;br /&gt;&lt;br /&gt;그러나 마약의 형태로 가공된 대마초에는 이 성분이 함유돼있지 않은 뿐더러 학습 능력이나 기억력 저하 등 뇌에 장기적 손상을 입힐 수도 있기 때문에 알츠하이머 예방 목적으로 대마초를 피워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lt;br /&gt;&lt;br /&gt;▲유전 걱정은 하지 말라 = 알츠하이머가 유전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알츠하이머 협회에 따르면 부모나 친척 가운데 노인성 치매 환자가 있었더라도 본인이 알츠하이머에 걸릴 확률은 다른 이들보다 아주 약간 높을 뿐이라는 것이다. &lt;br /&gt;&lt;br /&gt;따라서 전문가들은 굳이 알츠하이머의 유전성 검사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검사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별로 없는 데다가 불필요한 걱정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lt;br /&gt;&lt;br /&gt;▲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라 = 건강한 식생활은 알츠하이머를 예방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다. &lt;br /&gt;&lt;br /&gt;전문가들은 알츠하이머 예방을 위해 채소, 생선, 과일, 불포화 지방으로 이루어진 지중해식 식단을 권장한다. 지중해식 식단을 생활화하면 치매 발병률이 40% 가량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lt;br /&gt;&lt;br /&gt;이밖에 카페인을 다량 함유한 다크 초콜릿이나 카레에 많이 들어있는 &lt;/FONT&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amp;amp;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amp;q=%C4%BF%C5%A5%B9%CE&amp;amp;nil_profile=newskwd&amp;amp;nil_id=v20080527111915589&quot; target=new&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커큐민&lt;/FONT&gt;&lt;/A&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 &lt;/FONT&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amp;amp;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amp;q=%BA%A3%C5%B8%C4%AB%B7%CE%C6%BE&amp;amp;nil_profile=newskwd&amp;amp;nil_id=v20080527111915589&quot; target=new&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베타카로틴&lt;/FONT&gt;&lt;/A&gt;&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이 듬뿍 들어있는 당근, 고구마, 시금치 등도 치매 예방식품으로 꼽힌다.&lt;br /&gt;&lt;br /&gt;&lt;br /&gt;&lt;A href=&quot;http://media.daum.net/culture/health/view.html?cateid=1013&amp;amp;newsid=20080527111915589&amp;amp;cp=yonhap&amp;amp;RIGHT_TOPIC=R1&quot;&gt;http://media.daum.net/culture/health/view.html?cateid=1013&amp;amp;newsid=20080527111915589&amp;amp;cp=yonhap&amp;amp;RIGHT_TOPIC=R1&lt;/A&gt;&lt;/FONT&gt;</description>
			<category>생활건강</category>
			<author>美</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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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7 May 2008 18:18:3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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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선 시대 궁궐의 역사</title>
			<link>http://elesther.tistory.com/entry/%EC%A1%B0%EC%84%A0-%EC%8B%9C%EB%8C%80-%EA%B6%81%EA%B6%90%EC%9D%98-%EC%97%AD%EC%82%AC</link>
			<description>&lt;FONT face=&quot;&#039;Dotum&#039;, &#039;Sans-serif&#039;&quot; size=2&gt;&amp;nbsp;&amp;nbsp;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5대 궁궐은 &lt;FONT color=#666699&gt;&lt;STRONG&gt;경복궁&lt;/STRONG&gt;, &lt;STRONG&gt;창덕궁&lt;/STRONG&gt;, &lt;STRONG&gt;창경궁&lt;/STRONG&gt;, &lt;STRONG&gt;덕수궁(경운궁)&lt;/STRONG&gt;&lt;/FONT&gt; 그리고 &lt;FONT color=#006699&gt;&lt;STRONG&gt;경희궁(경덕궁)&lt;/STRONG&gt;&lt;/FONT&gt;이다.&lt;br /&gt;&lt;br /&gt;&lt;br /&gt;-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lt;br /&gt;&lt;br /&gt;&amp;nbsp;&amp;nbsp; &lt;FONT color=#006699&gt;태조 이성계는&lt;/FONT&gt; 조선을 건국(1392년)하고 나서 수도를 지금의 서울인 한양으로 옮긴 뒤 제일 먼저 종묘와 사직 그리고 궁궐인 &lt;FONT color=#006699&gt;&lt;STRONG&gt;경복궁&lt;/STRONG&gt;&lt;FONT color=#000000&gt;을 세웠다(1394년&lt;/FONT&gt;&lt;/FONT&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 그리고 &lt;FONT color=#006699&gt;3대 태종 때(1405년)&lt;/FONT&gt;에는 경복궁의 동쪽에 &lt;FONT color=#006699&gt;&lt;STRONG&gt;창덕궁&lt;/STRONG&gt;&lt;/FONT&gt;&lt;FONT color=#000000&gt;을 창건했다&lt;/FONT&gt;. 이로써 정궁 경복궁에 이어 이궁 창덕궁인 양궐 체제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임금들은 경복궁보다 창덕궁에 거처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리하여 많은 임금들이 창덕궁에서 거처하면서 함께 거처하는 식구들도 늘게 되었다. 따라서 &lt;FONT color=#006699&gt;성종 때&lt;/FONT&gt; 이르러서는 세분의 대비를 위해서 &lt;FONT color=#006699&gt;&lt;STRONG&gt;창경궁&lt;/STRONG&gt;&lt;/FONT&gt;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창경궁은 원래 수강궁(세종대왕이 상왕 아버지 태종을 위해서 지은 곳)이라는 곳에 몇 개의 건물을 더 만들어 붙여진 이름이었다. 창경궁은 창덕궁 옆에 위치하여 창덕궁의 부속 역할을 많이 하였다.&lt;br /&gt;&lt;br /&gt;&amp;nbsp;&amp;nbsp; 그 후 1592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 없어지게 된다. 일년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선조는 창덕궁을 재건하게 된다. 이는 경복궁이 풍수지리학적으로 길하지 못하다는 판단에서 그런 것이었다. 그리하여 창덕궁은 1610년 광해군때 다시 지어져서 마지막 황제에 이르기까지 270여년간 경복궁을 대신하여 정궁의 역할을 하고 창경궁은 1616년에 복원되었다. &lt;br /&gt;&lt;br /&gt;&lt;br /&gt;- 덕수궁 인경궁 경덕궁&lt;br /&gt;&lt;br /&gt;&amp;nbsp;&amp;nbsp; 반면 &lt;STRONG&gt;&lt;FONT color=#006699&gt;덕수궁(경운궁&lt;/FONT&gt;&lt;FONT color=#006699&gt;)&lt;/FONT&gt;&lt;/STRONG&gt;은 원래는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후손의 집이었으나 그 후 &lt;FONT color=#006699&gt;선조가 임진왜란 당시 임시로 거처하는 행궁(왕이 궁궐을 떠나 잠시 경유하는 궁)&lt;/FONT&gt;으로 사용하였다. 그후 광해군은 이곳에서 즉위한 후 경운궁이라 이름지어 7년간 왕궁으로 사용하였다&lt;FONT color=#000000&gt;( &#039;덕수&#039;란 말은 궁궐 자체의 이름이라기 보다는 그 궁궐에 사는 고종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1907년 일본의 압력에 의해 타의적으로 붙여진 이름이 덕수궁이다)&lt;/FONT&gt; . 광해군은 즉위한 후 인왕산 아래, 지금의 사직단 뒤편에 &lt;FONT color=#006699&gt;&lt;STRONG&gt;인경궁&lt;/STRONG&gt;&lt;/FONT&gt;, 그리고 그 앞쪽 지금의 새문안길가에 &lt;FONT color=#006699&gt;&lt;STRONG&gt;경덕궁&lt;/STRONG&gt;&lt;/FONT&gt;(경희궁이란 이름은 영조대에 바뀐 이름이다)을 지었다. 그러나 광해군은 몇가지 무리한 정책으로 인하여 왕이 된지 15년이 되는 1623년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고 인조가 왕이 된다. 인조는 광해군 대에 지었던 인경궁을 헐어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보수하였고 경덕궁은 그대로 두어 이궁으로 사용하였다. 이로써 &lt;FONT color=#006699&gt;창덕궁과 창경궁이 정궁&lt;/FONT&gt;이 되고 &lt;FONT color=#006699&gt;경덕궁(경희궁)이 이궁&lt;/FONT&gt;이 되는 새로운 체제가 성립되어 조선 후기 내내 지속되었다. &lt;br /&gt;&lt;br /&gt;&lt;br /&gt;&amp;nbsp;&amp;nbsp; 조선 후기의 정궁으로 쓰이던 창덕궁은 고종 초년에 경복궁이 중건(1868년)되자 그 지위에 변동이 생긴다. 경복궁이 다시 정궁의 지위를 회복하고 창덕궁와 창경궁은 이궁으로 쓰이며 그때까지 이궁으로 쓰이던 경희궁은 빈 궁궐이 되었다. 고종은 경복궁과 창덕궁으로 오가면서 생활하였다. &lt;br /&gt;&lt;br /&gt;&amp;nbsp;&amp;nbsp; 고종대에 왕이 궁궐을 옮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1894년 국내에서는 농민전쟁이 일어나고 대외적으로는 이를 핑계삼아 청나라와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벌이는 &lt;FONT color=#008000&gt;청&lt;/FONT&gt;&lt;FONT color=#008000&gt;일전쟁&lt;/FONT&gt;이 일어났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고종에게 압박을 가하여 고종은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다가 두달도 못되 다시 경복궁으로 옮기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이른바 &lt;FONT color=#008000&gt;갑오경장&lt;/FONT&gt;(옛날식의 정치제도를 서양의 법식을 볻받아 고친 일)을 실시하게 하는 등 계속 우리나라에 압력을 가하였다. 고종과 그 비인 명성왕후는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을 막아보려 했지만 오히려 일본은 일본공사 마우라의 지휘아래 일본군인, 자객들을 동원해 경복궁에서 명성왕후를 살해한다. 이를 &lt;FONT color=#008000&gt;을미사변(1896년)&lt;/FONT&gt;이라 한다. &lt;br /&gt;&lt;br /&gt;&amp;nbsp;&amp;nbsp; 이렇게 압박을 가하는 일본은 외국의 힘으로 막아보려 고종은 같은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를 &lt;FONT color=#008000&gt;아관파천&lt;/FONT&gt;이라 한다. 이로써 정궁인 경복궁이나 이궁인 창덕궁은 모두 빈 궁궐이 되고 만다. 다시 돌아오라는 국민들의 여망의 따라 고종은 1년만에 궁궐로 돌아온다(1897년). &lt;br /&gt;&lt;br /&gt;&amp;nbsp;&amp;nbsp; 그러나 고종은 경복궁도 창덕궁도 아닌 월산대군의 후손의 집을 확장, 대대적으로 보수하라는 명을 내리고 &lt;FONT color=#006699&gt;&lt;STRONG&gt;경운궁&lt;/STRONG&gt;&lt;/FONT&gt;이라고 칭하고 그곳으로 환궁한다. 고종은 경복궁에서 왕비가 일본인들에 의해 참혹한 최후를 맞았던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곳을 택한 것이다. 고종은 경운궁으로 돌아간 뒤 &lt;FONT color=#006699&gt;대한 제국을 선포하였다&lt;/FONT&gt;(1897년). 그러나 경운궁은 1904년의 대화재로 인해 거의 모든 전각들이 소실되었다가 1905년-1906년에 대부분의 전각들이 복원되었다.&lt;br /&gt;&lt;br /&gt;&amp;nbsp;&amp;nbsp; 한편 경희궁은 광해군 때 지어진 뒤 여러 왕들이 태어나고 즉위식을 갖는 등 이궁으로서 역할을 하다가 20세기 초에 들어오면서 일제의 강점으로 뜯겨나가고 헐리고 해서 그 정확한 때를 알 수 없으며 오직 궁궐지의 기록에 의해서 찾아볼 수 밖에 없다. &lt;br /&gt;&lt;br /&gt;&lt;br /&gt;&amp;nbsp; &amp;nbsp; 일제 강점기 때 수난을 당한 궁궐은 비단 경희궁뿐이 아니었다. 일제는 경복궁 흥례문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였으며 창경궁에는 동물원과 식물원을 개설하여 일반인에게 관람하게 하면서 격하시켜 &#039;창경원&#039;이라 부르게 하였다. &lt;br /&gt;&lt;br /&gt;&lt;/FONT&gt;&amp;nbsp;&amp;nbsp; &amp;nbsp;이렇듯 조선의 5대 고궁은 국가의 흥망성쇠에 다라 그 운명을 같이 해온 우리 역사의 동반자이다. 시대가 변하여 차차 원래의 모습으로 보수, 복원되어가고 있지만 지나온 그 역사는 궁궐 각 건물의 공간 안에 현존한다. 그러기에 고궁 탐방은 단지 휴식을 취하고 볼 것을 즐기는 눈요기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숨결을 함께 느껴볼 수 있는 역사 현장으로의 초대가 되는 셈이다.&lt;br /&gt;&lt;br /&gt;&lt;A href=&quot;http://www.cdg.go.kr/&quot;&gt;http://www.cdg.go.kr/&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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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美</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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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7 May 2008 16:39:2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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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토놀 북한산에 가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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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a href=&quot;http://cfs8.tistory.com/original/11/tistory/2008/05/14/18/22/482aaf384a8e2&quot; rel=&quot;lightbox&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cfs8.tistory.com/image/11/tistory/2008/05/14/18/22/482aaf384a8e2&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942&quot; width=&quot;534&quot;/&gt;&lt;/a&gt;&lt;/div&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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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미토놀</category>
			<author>美</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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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4 May 2008 18:17:0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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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四川地震现场报道：学校操场变成巨大坟墓</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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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FONT size=3&gt;朝鲜日报驻北京特派记者 朴胜俊/都江堰（四川省）=本报特派记者 李明振 (2008.05.14 11:09)&lt;!!--newswriterend--&gt; &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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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D&gt;&lt;FONT size=3&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chinese.chosun.com/site/data/img_dir/2008/05/14/200805140000131in_1.jpg&quot; border=0&gt; &lt;/FONT&gt;
&lt;DD&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3&gt;▲13日在中国四川省都江堰市，遇难家属握着在前一天发生的地震中遇难的学生的手。该学生被埋在倒塌的学校建筑里面而死亡。照片=路透社/NEWSIS&lt;/FONT&gt;&lt;/DIV&gt;&lt;/DD&gt;&lt;/DL&gt;&lt;/DIV&gt;&lt;/DIV&gt;&lt;FONT size=3&gt;13日晚，位于此次大地震震源地汶川县西南面的都江堰市变成了一座幽灵城市。从四川省省会成都市机场出发，在国道上行驶50公里后，抵达了都江堰郊区的街头，映入眼帘的全都是倒塌的房屋废墟和石头。商店全都关门，因断电这里一片漆黑。&lt;br /&gt;&lt;br /&gt;发生惨剧的地方是都江堰聚源中学。在三层教学楼瞬间倒塌的事故现场，有三辆吊车正在收拾废墟。一位救助人员表示：“昨天夜里以后，再没找到一名幸存者，只有尸体。”新华社报道说，当时被埋的900名学生中只救出了60多名。也就是说，现在还有800多名学生的尸体埋在建筑废墟之中。&lt;br /&gt;&lt;br /&gt;居民、救助人员和警察等500多人正在展开救援工作的现场旁边，学校操场仿佛一个“巨大的坟墓”。&lt;br /&gt;&lt;br /&gt;他们能做的事情不是救援，而是找出尸体并举行葬礼。天空和大地都变成了充满雨水和泪水、抽泣声和痛哭声的海洋。&lt;br /&gt;&lt;br /&gt;受灾地区的学校和工厂等都是不具备抗震设施的陈旧建筑，而且地震发生在学生和上班族都在建筑内的下午2时28分，因此损失更加严重。一名学生说：“建筑倒塌的瞬间正在4楼分组上课，突然间就不管三七二十一地往外跑，但一起跑出来的同学只有几人。”&lt;br /&gt;&lt;br /&gt;宽10米、长20米的大型帐篷下，摆放着被埋在泥土里的100多具尸体。因为昨天夜里下了一场暴雨，孩子们的尸体都肿胀起来。&lt;br /&gt;&lt;br /&gt;人们为了方便移动，用黄色棉布将孩子的尸体包好后放在木板上。运送尸体的车辆不断将尸体运往成都市内，每次运送3至4具。到处都充满了呻吟声和痛哭声。&lt;br /&gt;&lt;br /&gt;一位生还者说：“天空也在哭泣。”在似乎永远不会停的雨中，掀开塑料布确认儿子尸体的一老奶奶坐在地上哽咽不止。 &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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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style=&quot;BORDER-RIGHT: #eeeeee 3px soli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eeeeee 3px solid;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3px; MARGIN: 0px 10px 10px 0px; BORDER-LEFT: #eeeeee 3px soli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eeeeee 3px solid&quot;&gt;
&lt;DL class=article_photo&gt;
&lt;DD&gt;&lt;FONT size=3&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chinese.chosun.com/site/data/img_dir/2008/05/14/200805140000132in_2.jpg&quot; border=0&gt; &lt;/FONT&gt;
&lt;DD&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3&gt;▲12日在中国四川省都江堰市，救援队员和军人们正在扒开因地震而变成一片废墟的医院建筑残骸，展开救助工作。都江堰是古代水利设施所在的历史悠久的地方。照片=美联社/韩联社&lt;/FONT&gt;&lt;/DIV&gt;&lt;/DD&gt;&lt;/DL&gt;&lt;/DIV&gt;&lt;/DIV&gt;&lt;FONT size=3&gt;在救灾现场周围，像疯了一样到处转的女性隋某哽咽着说：“从昨天开始就没有找到我上初三的儿子，请一定要找到。”&lt;br /&gt;&lt;br /&gt;市中心的都江堰中医院的一栋六层建筑已经完全倒塌，100多名患者和20多名医护人员全被埋在里面。附近道路上，运载13个汽油罐行驶途中因地震翻车的40辆货车13日仍然被火苗包围。&lt;br /&gt;&lt;br /&gt;因地震人员伤亡最严重的是都江堰东部的绵阳市。绵阳市高中学生李敏接受记者的电话采访时说：“我们学校教学楼倒塌后，2000多人被埋在里面。1000多人没能出来。”&lt;br /&gt;&lt;br /&gt;成都市内一片沉寂。当天继续发生了1600多次余震，人们仍然被恐惧所笼罩。办公室和学校几乎全部关门。&lt;br /&gt;&lt;br /&gt;里氏7.8级强烈地震发生23个小时后的13日下午1时（韩国时间下午2时），震源地汶川县县委书记终于通过卫星电话成功和外界取得了联系。&lt;br /&gt;&lt;br /&gt;据中国官方媒体新华社报道，汶川县县委书记王斌哽咽地报告灾情说，汶川县威州、绵虒地区农民群众的房屋大部分倒塌，汶川县城部分房屋倒塌、大部分房屋出现险情，县城3万余人在避难场所不敢回家。地震震中的映秀、漩口、卧龙地区至今仍无一点信息，通讯、交通完全中断。截至2007年底，汶川县的人口为10.5436万。&lt;br /&gt;&lt;br /&gt;王斌对取得联系的上级官员表示，汶川急需通过空投方式解决帐篷、食品、药品和卫星通信设备，急需医务人员空降到现场抢救受伤群众。根据王斌的要求，中国空军当局已经启动空投工作。&lt;br /&gt;&lt;br /&gt;德新社（DPA）透露说，12日发生地震时，成都附近的阿坝藏族自治州茂县有37名游客死亡，到震中附近的大熊猫栖息地观光的15名英国游客也是生死未卜。&lt;br /&gt;&lt;br /&gt;韩国驻华大使馆13日表示，146名韩国游客在地震发生之前到震中北部的旅游地九寨沟旅游后，为回国而返回成都，但目前被困在成都机场，正在等待航班。&lt;/FONT&gt;&lt;/DD&gt;&lt;/DL&gt;&lt;/DIV&gt;</description>
			<category>기사스크랩</category>
			<category>사천 지진</category>
			<author>美</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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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4 May 2008 17:07:0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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